전복수산 2005. 8. 11. 15:50

○ 마을 형성(形成)
효종대(孝宗代)(1650∼1659)에 현풍곽씨(玄豊郭氏)가 처음 입주(入住)하고

 후 강릉유씨(江陵劉氏), 천안 전씨(天安全氏)가 입주(入住)하여 마을을 형성(形成)하였다.

○ 지명 유래(地名 由來)
통리의 통은 통기(桶器), 즉 관(管제)의 의미를 갖는다. 아주 오래전에는 월송리와 중통리

사이의 잘록한 지역이 바닷물이 통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오랜 세월을 두고 모래가 퇴적하여 메꾸어진 지역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래서 통리는 월송리에서 중리나 백도리로 통(通)하는 길목이라는 점에서도 통리(桶里)
라는 명칭의 개연성이 인정되기도한다.

 

통리 남쪽에 있는 목섬(項島)이라는 명칭도 뱃길로 소안도에서
노화도를 잇는 목이 되는곳이라는 점에서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도한다.

또 주도에서 고기잡이 왔던 어부들 이 풍랑에 배가 파손돼 어부 세사람이 통나무 를 타고

헤엄쳐 상륙, 생명을 구한 곳이 이 마을이라 해서 통리(通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왜정시 중통리(中桶里)에 속했으나 해방후 분구(分區) 되었다.

○ 전 설(傳 說)
북암절터 : 통리 뒷산 북쪽에 북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노승들이 도를 닦으러

올때마다 정기를 잃자 절을 폐쇄했다고 하며 현재에도 승려들이 통리마을에는

시주를 받으러 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