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lla fantasia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넬라 판타지아 요 베도 운 몬도 주스또
나는 환상속에서 모두들
Li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
리 뚜띠 비보노 인 빠체 인 오네스따
정직하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봅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로 소뇨 다니메 께 쏘노 ?쁘레 리베레
나는 떠다니는 구름처럼
Come le nuvole che volano,
꼼메 레 누볼레 께 볼라노
항상 자유로운 영혼으 꿈꿉니다.
Pien' d'umanit? in fondo all'anima.
삐엔 두마니따 인 폰도 (알)라니마
깊은 곳까지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chiaro,
넬라 판타지아 요 페도 운 문도 끼아로
나는 환상속에서 밤조차도
Li anche la notte 챔 meno oscura.
리 앙케 라 노떼 에 메노 오스쿠라
어둡지 않은 세상을 봅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로 소뇨 다니메 께 소뇨 ?쁘레 리베레
나는 저 떠다니는 구름처럼
Come le nuvole che volano.
꼼메 레 누볼레 께 볼라노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을 꿉니다.
Pien' d'umanit? in fondo all'anima.
삐엔 두마니따 인 폰도 라니마
영혼 깊은 곳까지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Nella fantasia esiste un vento caldo,
넬라 판타지아 이시스테 운 벤또 깔도
환상에서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Che soffia sulle citt?, come amico.
께 소피아 술레 치따 꼼메 아미꼬
따듯한 바람이 불어옵니다.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로 소뇨 다니메 께 소노 셈쁘레 리베레
나는 저 떠다니는 구름처럼
Come le nuvole che volano,
꼼메 레 누볼레 께 볼라노
항상 자유로운 영혼을 꿈꿉니다.
Pien' d'umanit? in fondo all'anima.
삐엔 두마니따 인 폰도 라니마
영혼 깊은 곳까지 박애로 충만한 영혼을....
지금은 페허가 되어버린 백년사
진묵스님 그외 다수의 고승들이 수행처로 거처을 삼아던곳 백년사
그곳을 카메라 영상에 담아봤습니다..
서옹 스님께서 들려주셨던 진묵 대사 이야기
진묵이 일곱 살에 봉서사로 출가하여 사미승이 된 뒤, 운문암으로 와서 茶角의 所任을 보고 있을 때였다.
대중 스님들 중에서 가장 나이 어린 진묵이 하루는 신중단(神衆壇)에 차 공양을 했다.
그날 밤 대중 스님들이 모두 같은 꿈을 꾸었는데, 한 신중(神衆)이 나타나 말했다.
“우리들은 불법을 지키는 호법신인데 부처님의 예를 받으니 마음이 황공하구나.
그러니 다각의 소임자를 바꿔달라.”
다음 날 대중 스님들은 간밤의 꿈을 서로 얘기하며 의아하게 여겼다. 그
런데 때마침 아랫마을에 사는 나무꾼이 일옥(一玉·진묵의 법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조금 전에 부추를 뜯고 있었습니다. 그때 두 남녀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운문암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그들은 대성통곡을 하며 내려왔습니다. 두 남녀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았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영원히 안주할 곳을 찾아 올라갔지만 일옥 스님이 맹화(猛火)로 저희들을 지져 화독(火毒)을 이겨내지 못해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제야 대중 스님들은 진묵 대사가 불(佛)의 화신임을 깨달았다. 두 남녀가 ‘마군魔軍)’이었으므로 그들을 화광삼매(火光三昧)로 내쳤던 것이다.
마침내 대중 스님들은 암자의 불사(佛事)를 마치게 되었을 때 진묵 대사를 증명으로 삼았다. 그때 진묵 대사는 대중 스님들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와서 불사를 하기 전에는 불상에 손을 대지 말라.”
이후 운문암(백양사)에서는 불상의 금물이 벗겨져도 개금하지 않게 되었다고........
진묵스님에 대한 일화는 너무 많습니다.
그중에 최근 어느스님이 올린글을 발췌해서 올립니다..
밑에 사진은 보길도 보옥리 산에 위치한 화재로 소실된 백년사절에 관한 사진 입니다. 소실된 년도는 정확히 모릅니다
부모님 연세가 72세인데 절이 소실된걸 보/지 못헀다고 하니
아마 한 100년 은 되지않았나 싶습니다.
참고) 절에서 바라본 보길도 바다전경은 그야말로 황홀합니다.
그리고 절터가 다른 절하고는 비교할수 없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절 앞마당이 바위로 되어 있고 앞마당 바위 밑에는 수행할수 있는 바위동굴이 있습니다.
특이한 절터 중에 한곳 백년사(백련사) ,보시고 궁금한 것은 매일로 부탁드립니다...
블로그(섬순례자) 발췌 주소: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ogilnara&logNo=140067436283
간만에 봉순이를 데리고 산에 가는 길입니다. 부용리 마을 회관을 지나 낙서재 길로 접어듭니다. 오늘은 적자산을 넘어 뽀리기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경사가 급하고 가파르지만 그래도 산이 높지 않으니 적자산(432m)까지는 30분이면 족히 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봉순이 때문에 자주 쉬느라 발길이 더딥니다. 힘겹게 뒤쫓아오던 봉순이가 심하게 헐떡이며 또 쉬었다 가자합니다. 처음 집을 나설 때는 흥분해서 나를 끌고 가더니 이제는 내 손에 끌려옵니다.
"봉순아, 너도 많이 늙었구나".
여덟 살, 개 나이로는 노년기에 접어든 봉순이에게는 산길을 오르기가 여간 버겁지 않겠지요. 나이도 나이지만 늘 묶여 있다 갑자기 운동량이 많아지니 힘에 부칠 만도 합니다.
내가 뽀리기 재를 바로 넘지 않고 적자산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습니다. 하늘이 너무 푸르고 대기가 맑아 오늘은 한라산을 볼 수 있으리란 기대감 때문이었지요.
적자산 능선을 따라 5분 남짓 걸어가니 누룩바위가 나옵니다. 역시 기대처럼 누룩바위에 오르자 한라산이 거기에 있습니다. 뱃길로 두 시간 남짓, 보길도에서 제주도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닙니다. 예전에는 보길도 사람들도 겨울철이면 제주의 감귤 농장에 계절 노동자로 품 팔러 다니곤 했지요. 옛 글처럼 산천은 의구한데 사람은 자취도 없습니다.
아무리 맑은 날이라도 한라산은 온전히 제 모습을 다 보여준 적이 없습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한라산 아래는 안개구름에 쌓여 있고 하늘 섬처럼 구름 한가운데 한라산이 떠 있습니다. 신선들이 산다는 봉래, 방장산이 저와 같을까요.
있으라 있으라, 발길을 사로잡는 누룩바위를 벗어나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뽀리기재를 넘어 보옥리 옥산의 암자터에 갈 참입니다. 백년암. 오늘 내가 찾아가는 암자터는 조선조 명종 때의 고승 진묵대사의 토굴터로 알려진 곳입니다. 진묵대사가 보길도에 토굴을 짓고 살았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몇 년 전 실상사 도법스님한테서였습니다.
아니지요. 진묵대사 토굴터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벌써 30년도 전입니다. 내가 까마득히 잊고 있던 사실을 도법 스님이 상기시켜준 것이었지요. 진묵스님에 관한 전설을 처음 들었던 것은 나의 조부님에게서였습니다.
조부는 티끌이었다
조부는 구름이었다
조부는 강물이었다
조부는 바다
정박을 모르는 배
비를 부르는 바람
조부는 천둥 번개였다
조부는 묘지였고
집터였다
초분이었다
움막이었다
조부는 흙이었다
티끌이었다
내 조부님은 지관이었습니다. 조부님은 집안 일 팽개치고 평생을 구름처럼 떠돌았지요. 완도 지방에서 제법 이름난 지관이자 풍수가였던 조부님을 따라 나도 완도 인근의 여러 섬을 다녀봤고, 보길도, 노화도, 넙도, 소안도 구석구석 안 가 본 곳이 없었습니다. 나침반 하나 들고 조부님은 집터며 묘 자리며 명당을 찾아 다녔고, 지금 넘는 뽀리기재도 무시로 넘어 다녔습니다.
조부님을 따라 뽀리기 재를 넘으면서 진묵대사 이야기를 처음 들었습니다.
"진묵스님이 살던 절터가 저기란다."
조부님이 말씀 하셨지만 나는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조부님이 늘 이야기 해주시던 윤 고산이나, 서산대사나 사명당 스님의 신화 같은 이야기가 어린 나에게는 모두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도인들이었습니다. 꿈같은 이야기들. 구름을 타고, 바람을 부리고, 용을 낚고, 왜군들을 물리친 이야기들.
내가 어릴 적 조부님께 늘 듣던 '이웃 마을 할아버지' 고산을 뒤늦게 다시 알았던 것처럼 진묵 스님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내가 훌쩍 자라 어른이 된 뒤였습니다. 역사상 수많은 고승 대덕이 있었고, 도력 높은 큰 스님들이 많았지만 내가 가장 큰 매력을 느낀 스님은 원효도, 의상도, 만해도, 만공도, 성철도 아니었고, 혜능도, 마조도, 임제도, 백장도 아니었습니다. 진묵스님이었습니다.
그 진묵스님이 보길도에까지 들어와서 수행했다는 사실은 나를 늘 가슴 뛰게 합니다. 나에게 보길도가 소중한 땅인 것은 고산 윤선도가 놀던 곳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묵스님이 수행했던 땅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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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길도 백년암 터 앞의 너럭 바위 |
ⓒ 강제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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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길도의 일몰 |
ⓒ 강제윤 |